아이폰을 만든 손이 만든 기기가 10개월 만에 멈췄다
2025년 2월 28일 오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작은 인공지능 배지들이 일제히 작동을 멈췄다. 이 기기의 이름은 에이아이 핀(Ai Pin)이었다. 한때 스마트폰을 대체할 미래로 불리며 기업 가치가 1조 원을 넘겼던 제품이, 정식 판매를 시작한 지 단 10개월 만에 서버가 꺼지며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다. 이 배지를 만든 회사는 휴메인(Humane)이었고, 창업자는 다름 아닌 아이폰을 세상에 선보인 애플 출신의 천재들이었다. 화려한 이력, 거물 투자자, 그리고 미래를 향한 담대한 비전까지 모든 것을 갖춘 회사가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무너졌을까. 그 이야기는 기술의 실패인 동시에, 사람들의 오래된 습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화면 없는 세상이라는 담대한 약속
휴메인이 내건 비전은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이었다. 스마트폰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 주머니 속 네모난 화면 대신 옷깃에 다는 작은 배지 하나면 충분한 미래였다. 에이아이 핀은 화면조차 없었다. 대신 목소리로 말을 걸면 인공지능이 답했고, 손바닥에 초록빛을 쏘아 정보를 보여 주는 방식이었다. 전화를 걸고, 실시간으로 통역을 하고, 눈앞의 물건을 알아보는 일까지 이 하나로 가능하다는 약속은 무척 매력적으로 들렸다.
이 개념은 스마트폰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하루 종일 화면을 들여다보는 삶에서 벗어나, 필요할 때만 인공지능에게 묻고 답을 얻는다는 그림은 분명 이상적이었다. 휴메인은 이 배지를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상징으로 포장했다. 발표 무대는 애플의 신제품 공개 행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세련되고 자신감이 넘쳤다. 실제로 초기 시연 영상에서 에이아이 핀은 외국어를 실시간으로 통역하고, 손바닥 위에 정보를 띄우며, 질문에 척척 답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장면만 보면 정말로 스마트폰이 필요 없는 세상이 코앞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언론은 앞다투어 이 배지를 다음 시대를 여는 기기라고 소개했고, 기대는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이폰을 만든 손, 그리고 거물들의 돈
이 배지를 만든 두 사람은 평범한 창업자가 아니었다. 이므란 초드리(Imran Chaudhri)는 애플에서 20년 넘게 아이폰의 화면을 디자인한 인물이고, 그의 아내 베서니 봉지오르노(Bethany Bongiorno)는 애플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이끌던 핵심 엔지니어였다. 세상은 이 부부를 아이폰을 만든 손이라 불렀다. 애플에서 쌓은 경력과 명성은 그 자체로 강력한 신뢰의 보증서였다.

두 사람이 회사를 차리자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오픈에이아이의 샘 올트먼과 마이크로소프트까지 투자에 이름을 올렸고, 회사가 끌어모은 돈은 2억 3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3천억 원이 넘었다.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몸값은 1조 원을 넘어섰다. 화려한 이력과 거물들의 이름이 모든 의심을 지워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 부부가 애플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한 번 세상의 기준을 바꿔 놓을 것이라 기대했다.

출시 직후부터 시작된 혹평
2024년 4월, 699달러짜리 에이아이 핀이 정식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출시 직후부터 기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배터리가 반나절을 채 버티지 못한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손바닥에 쏜 화면은 밝은 곳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인공지능은 간단한 질문에도 몇 초씩 느리게 반응했고, 틀린 답을 자신 있게 내놓기도 했다.

수백만 명이 구독하는 한 유명 IT 리뷰어는 이 기기를 두고 지금까지 리뷰한 제품 중 최악이라고 혹평했다. 이 리뷰는 큰 파장을 일으켰고, 많은 잠재 구매자가 지갑을 닫는 계기가 됐다. 미래를 판다던 배지는 정작 현실에서 제 몫을 해내지 못했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같은 시기 또 다른 인공지능 기기들도 잇따라 혹평을 받으면서, 인공지능 하드웨어 전체에 대한 회의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반품이 판매를 추월한 날
2024년 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팔린 기기보다 반품된 기기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이 기기는 699달러라는 가격에 더해 매달 24달러의 구독료까지 내야 하는 부담스러운 물건이었다. 반면 회사에는 남는 것이 없는 구조였다. 미래를 향한 꿈은 냉정한 현실 앞에서 빠르게 식어 갔다.

반품 사태는 단순한 판매 부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얼리어답터, 즉 새로운 기술에 가장 관대한 소비자들마저 등을 돌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제품이 대중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었다. 휴메인은 서둘러 가격을 낮추고 기능을 보완했지만, 한번 무너진 신뢰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입소문은 이미 부정적인 방향으로 굳어졌고, 초기의 뜨거운 관심은 차갑게 식은 뒤였다. 한번 최악이라는 낙인이 찍힌 제품이 다시 기회를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반품의 거센 물결은, 화려하게 출발했던 이 회사의 마지막을 조용히 알리는 서막이 되고 말았다.
헐값에 팔려 간 미래
결국 2025년 2월, 컴퓨터 회사 HP가 휴메인의 핵심 자산을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약 1600억 원이었다. 한때 1조 원을 넘겼던 몸값의 6분의 1도 안 되는 헐값이었다. HP는 회사의 지식재산권과 300건이 넘는 특허, 그리고 인공지능 플랫폼과 대부분의 직원을 데려갔다. 그러나 정작 유일한 하드웨어 제품이던 에이아이 핀은 그대로 폐기하기로 했다.

HP의 관심은 배지 그 자체가 아니라, 휴메인이 쌓은 인공지능 기술과 인재였다. 다시 말해 시장은 에이아이 핀이라는 제품에는 거의 값을 매기지 않은 셈이다. 미래를 상징하던 배지는 그렇게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가장 먼저 믿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신당하다
서버가 꺼지던 날, 사용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초기에 이 배지를 산 얼리어답터들은 수십만 원을 주고 미래를 샀다고 믿었지만, 손에 남은 것은 작동하지 않는 배지 하나뿐이었다. 서버가 꺼지자 전화도, 인공지능도, 심지어 시간을 확인하는 기능까지 전부 사라졌다. 값비싼 기기가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장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미래를 가장 먼저 믿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먼저 배신당한 셈이었다. 클라우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기가 회사의 운명과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소비자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우리가 사는 것이 물건인지, 아니면 언제든 꺼질 수 있는 서비스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숫자가 보낸 위태로운 신호
에이아이 핀이 남긴 숫자는 씁쓸하다. 가격은 699달러, 한때의 몸값은 1조 원, 그리고 판매부터 종료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개월이었다. 매달 24달러씩 내던 구독 서비스도 그날 함께 사라졌다. 미래를 팔겠다던 회사가 정작 자기 제품의 미래조차 지켜 내지 못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높은 반품률과 잇따른 혹평이라는 숫자는 처음부터 위태로운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하드웨어라는 어려운 숙제
에이아이 핀의 실패는 한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같은 시기, 인공지능을 앞세운 여러 새 기기들이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화려한 발표와 달리 실제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스마트폰이 이미 잘하는 일을 굳이 별도의 기기로 옮겨야 할 이유를 소비자에게 설득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공지능 하드웨어는 두 가지 어려운 숙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하나는 스마트폰만큼 편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이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확실히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에이아이 핀은 이 두 숙제를 모두 풀지 못했다. 배지는 스마트폰보다 불편했고, 스마트폰이 못 하는 결정적인 무언가도 제공하지 못했다. 결국 소비자에게 이 기기는 비싸고 번거로운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았다. 기술적 야심은 훌륭했지만, 사람들의 실제 생활 속으로 파고들지는 못한 것이다. 이 지점은 앞으로 새로운 기기를 꿈꾸는 모든 창업자에게 냉정한 교훈으로 남았다.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
에이아이 핀은 결국 미래가 되지 못했다. 화면 없는 세상이라는 꿈은 아름다웠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애플을 만든 천재들조차 스마트폰이라는 거대한 습관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작은 배지의 실패는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사람들의 오래된 습관과 새로움 사이의 거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술 산업의 역사에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제품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그 제품이 진짜로 미래였는지, 아니면 미래처럼 포장된 환상이었는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에이아이 핀은 분명 대담한 시도였지만, 소비자가 실제로 원하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새로움은 언제나 옳은 것일까, 아니면 익숙함이 더 강한 것일까. 미래를 산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도박인지도 모른다. 휴메인의 짧은 10개월은 우리에게 바로 그 질문을 남기고 조용히 막을 내렸다.
물론 에이아이 핀의 실패가 인공지능 웨어러블이라는 개념 자체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언젠가는 배터리와 화면, 그리고 인공지능의 속도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옷깃에 다는 작은 기기가 정말로 스마트폰을 대신하는 미래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 미래는 화려한 발표나 유명한 창업자의 이름이 아니라, 소비자가 매일 쓰고 싶어 하는 실제 경험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휴메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들이 모이고 아무리 많은 돈이 몰려도, 사람들의 일상을 진짜로 편리하게 만들지 못하는 제품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미래를 파는 일은 쉽지만, 미래를 실제로 손에 쥐여 주는 일은 그보다 훨씬 어렵다. 그리고 소비자는 결국, 화려한 약속이 아니라 매일의 편리함에 지갑을 연다. 에이아이 핀이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은 어쩌면 바로 그 단순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화면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이 작은 배지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스마트폰이라는 화면에 얼마나 깊이 길들어 있는지를 다시 한번 또렷하게 일깨워 주었다.